태국 여행기(4) – 파타야

셋째 날 태국의 정식 국명은 태국 왕국이다. 고대 중국 남부에서 이주한 13세기 이전까지 제대로 된 왕국조차 없었던 태국은 13세기경에는 부족연합 정도의 공국이 세워졌다. 수코타이 왕국이 최초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 태국의 역사는 주변 인도차이나 반도 국가들에 비해 역사가 짧다. 이후 아유타야 왕국, 톰부리 왕조, 짜끄리 왕조로 이어져 내려왔다. 현재 태국을 구성하는 주민족인 태국족은 유사한 언어를 구사하는 동일어족 태국의 일부다. 북베트남에서는 누르족으로 불리며 라오스의 라오족, 태국의 태국족, 버마의 샨족 등이 모두 태국인이다. 셋째 날 태국의 정식 국명은 태국 왕국이다. 고대 중국 남부에서 이주한 13세기 이전까지 제대로 된 왕국조차 없었던 태국은 13세기경에는 부족연합 정도의 공국이 세워졌다. 수코타이 왕국이 최초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 태국의 역사는 주변 인도차이나 반도 국가들에 비해 역사가 짧다. 이후 아유타야 왕국, 톰부리 왕조, 짜끄리 왕조로 이어져 내려왔다. 현재 태국을 구성하는 주민족인 태국족은 유사한 언어를 구사하는 동일어족 태국의 일부다. 북베트남에서는 누르족으로 불리며 라오스의 라오족, 태국의 태국족, 버마의 샨족 등이 모두 태국인이다.

태국 최초의 왕국 수코타이 최초의 왕국 스코타이

타이족이 국가를 형성하기 전에는 인도차이나 각 지역에 민족이 분포하며, 캄보디아 크메르 왕국이 인도차이나를 지배하고 있을 때 비로소 타이족의 기록이 나타난다. 흔히 태국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는 샴이 캄보디아인에게 ‘야만인’이라는 뜻을 가져 앙코르와트에는 태국인의 모습으로 샴인을 보조해 놓았다. 타이족이 국가를 형성하기 전에는 인도차이나 각 지역에 민족이 분포하며, 캄보디아 크메르 왕국이 인도차이나를 지배하고 있을 때 비로소 타이족의 기록이 나타난다. 흔히 태국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는 샴이 캄보디아인에게 ‘야만인’이라는 뜻을 가져 앙코르와트에는 태국인의 모습으로 샴인을 보조해 놓았다.

1238년 태국 최초의 태국인 국가 체제를 갖춘 수코타이 왕국에서 현재의 차크리 왕조까지 진행되는 동안 태국은 다른 주변 국가들과의 투쟁으로 성장해 왔으며, 이들 국가의 정복과 지배의 관계가 복잡하게 전개되어 지금도 서로 앙숙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얀마 타웅우 왕국의 침입으로 찢어지는 라오스의 랑산 왕국은 1713년 참파삭 지방이 비엔티안에 반란을 일으켜 떠나고 결과적으로 랑산 왕국은 북부의 루앙프라방 왕국, 중부의 비엔티안 왕국, 남부의 참파삭 왕국으로 분열되어 멸망한다. 또 태국 아유타야의 캄보디아 크메르 왕국 침공, 이양마의 침공으로 아유타야 멸망 등 서로 물고 물리는 전쟁이 이어지면서 인도차이나의 패권국에 대한 야심은 변함이 없다. 1238년 태국 최초의 태국인 국가 체제를 갖춘 수코타이 왕국에서 현재의 차크리 왕조까지 진행되는 동안 태국은 다른 주변 국가들과의 투쟁으로 성장해 왔으며, 이들 국가의 정복과 지배의 관계가 복잡하게 전개되어 지금도 서로 앙숙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얀마 타웅우 왕국의 침입으로 찢어지는 라오스의 랑산 왕국은 1713년 참파삭 지방이 비엔티안에 반란을 일으켜 떠나고 결과적으로 랑산 왕국은 북부의 루앙프라방 왕국, 중부의 비엔티안 왕국, 남부의 참파삭 왕국으로 분열되어 멸망한다. 또 태국 아유타야의 캄보디아 크메르 왕국 침공, 이양마의 침공으로 아유타야 멸망 등 서로 물고 물리는 전쟁이 이어지면서 인도차이나의 패권국에 대한 야심은 변함이 없다.

랑상 왕국의 분열과 18세기 인도차이나 랑상 왕국의 분열과 18세기 인도차이나

태국의 전신주는 사각형이다. 뱀이 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태국에서는 뱀에 물려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뱀은 태국에서 무서운 존재다. 뱀은 인도차이나의 역사다.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인도차이나 사원의 건축물이나 왕국의 지붕 꼬리 형상은 뱀을 상징한다. 기원전 인도차이나의 고대 왕조인 후난은 땅의 신인 나가신의 여왕이 지배하던 국가였다. 태국의 전신주는 사각형이다. 뱀이 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태국에서는 뱀에 물려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뱀은 태국에서 무서운 존재다. 뱀은 인도차이나의 역사다.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인도차이나 사원의 건축물이나 왕국의 지붕 꼬리 형상은 뱀을 상징한다. 기원전 인도차이나의 고대 왕조인 후난은 땅의 신인 나가신의 여왕이 지배하던 국가였다.

인도차이나 고대 왕조의 후난 왕국 인도차이나 고대 왕조의 후난 왕국

나가는 인도 신화에 나오는 상체는 사람, 하체는 뱀으로 표현된다. 나오는 땅의 신이요 뱀의 신이다. 나가신은 힌두교, 불교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인도와 근접한 인도차이나 반도는 인도 문명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아 인도의 주신 중 하나인 비슈누 신 등과 함께 대중화된 신이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는 비슈누 신을 모시기 위해 지어졌으며 앙코르와트 건축물의 장식물에는 나가상을 빼놓을 수 없다. 태국과 캄보디아 왕궁 곳곳에 서 있는 괴물 형상의 조각상,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한 지붕과 계단과 다리 난간도 뱀 형상을 표현한 나가상이다. 나가는 인도 신화에 나오는 상체는 사람, 하체는 뱀으로 표현된다. 나오는 땅의 신이요 뱀의 신이다. 나가신은 힌두교, 불교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인도와 근접한 인도차이나 반도는 인도 문명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아 인도의 주신 중 하나인 비슈누 신 등과 함께 대중화된 신이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는 비슈누 신을 모시기 위해 지어졌으며 앙코르와트 건축물의 장식물에는 나가상을 빼놓을 수 없다. 태국과 캄보디아 왕궁 곳곳에 서 있는 괴물 형상의 조각상,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한 지붕과 계단과 다리 난간도 뱀 형상을 표현한 나가상이다.

인도 마하마리플럼 사원의 장상 부각(네이버) 인도 마하마리플럼 사원의 장상 부각(네이버)

인도차이나는 공동문화권이다. 민족공동운명체라는 개념으로 인도차이나에서 국경이라는 개념은 희박하다. 왕조가 봉기해 권력을 잡으면 그 세력이 미치는 범의까지가 국경이다. 인도차이나에서 왕조의 교체라는 것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세력을 통하던 권력이 힘을 잃는다는 뜻이다. 인도차이나는 공동문화권이다. 민족공동운명체라는 개념으로 인도차이나에서 국경이라는 개념은 희박하다. 왕조가 봉기해 권력을 잡으면 그 세력이 미치는 범의까지가 국경이다. 인도차이나에서 왕조의 교체라는 것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세력을 통하던 권력이 힘을 잃는다는 뜻이다.

미얀마 쉐다곤 파고다 사원(네이버) 미얀마 쉐다곤 파고다 사원(네이버)

따라서 전쟁은 수없이 일어나고 수많은 민족이 혼재한다. 오늘은 미얀마 국민이 되고 내일은 라오스, 그 다음날은 캄보디아, 또 그 다음날은 태국 국민이 되는 상황이다. 권력을 잡기 위한 쟁투가 심할수록 희생되는 남성은 많아지고 가정경제는 여성의 몫이 된다. 국왕은 권위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 신임을 자처하고, 또 그런 착각 속에서 거대한 신전과 사원을 건축한다. 이러한 왕의 신격 개념은 비정상적인 인간의 행동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인도차이나의 현실이자 역사였다. 인도차이나 여러 나라의 전설들의 중심은 동남아시아의 토착세력과 중국과 인도에서 온 세력의 결합과 투쟁을 상징한다. 인도차이나에 유입된 민족에게 정착을 위한 타 부족과의 전쟁이 필수적이며, 여러 왕국이 분열되어 합쳐지면서 민족의 고유 문화는 곧 인도차이나의 공통 문화로 발전한다. 따라서 전쟁은 수없이 일어나고 수많은 민족이 혼재한다. 오늘은 미얀마 국민이 되고 내일은 라오스, 그 다음날은 캄보디아, 또 그 다음날은 태국 국민이 되는 상황이다. 권력을 잡기 위한 쟁투가 심할수록 희생되는 남성은 많아지고 가정경제는 여성의 몫이 된다. 국왕은 권위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 신임을 자처하고, 또 그런 착각 속에서 거대한 신전과 사원을 건축한다. 이러한 왕의 신격 개념은 비정상적인 인간의 행동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인도차이나의 현실이자 역사였다. 인도차이나 여러 나라의 전설들의 중심은 동남아시아의 토착세력과 중국과 인도에서 온 세력의 결합과 투쟁을 상징한다. 인도차이나에 유입된 민족에게 정착을 위한 타 부족과의 전쟁이 필수적이며, 여러 왕국이 분열되어 합쳐지면서 민족의 고유 문화는 곧 인도차이나의 공통 문화로 발전한다.

라오스 탓에 루앙사원(네이버) 라오스 탓에 루앙사원(네이버)

태국 여행기에 이런 역사적 내용을 다룬 것은 방콕이라는 한 도시 여행으로는 풀리지 않는 숱한 수수께끼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고대 왕국의 중심이었던 아유타야는 물론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태국의 문화와 태국인의 정서를 제대로 접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인도와 인접한 인도차이나에 소승불교가 광범위한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인도차이나는 과연 사찰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불교 사찰이 발달해 있다. 물론 바라문교의 영향을 받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가 인트차이나 건축의 기원이자 중심이라는 사실 확인을 통해서도 이들 국가의 역학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라마 4세가 앙코르와트를 해체해 태국으로 가져가고 싶었던 것, 기원전 인도에서 제작된 에메랄드 불상이 천년의 긴 세월 동안 인도차이나 각국을 떠돌며 이를 쟁취하기 위해 각축을 벌인 것, 모두가 인도차이나 반도의 특수성을 말해준다. 빈약한 역사 지식과 인도차이나에 대한 몰이해로 시작된 방콕의 여정은 미련과 안타까움만 남기고 해안가 휴양도시인 파타야로 이어진다. <파타야> 태국 여행기에 이런 역사적 내용을 다룬 것은 방콕이라는 한 도시 여행으로는 풀리지 않는 숱한 수수께끼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고대 왕국의 중심이었던 아유타야는 물론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태국의 문화와 태국인의 정서를 제대로 접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인도와 인접한 인도차이나에 소승불교가 광범위한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인도차이나는 과연 사찰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불교 사찰이 발달해 있다. 물론 바라문교의 영향을 받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가 인트차이나 건축의 기원이자 중심이라는 사실 확인을 통해서도 이들 국가의 역학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라마 4세가 앙코르와트를 해체해 태국으로 가져가고 싶었던 것, 기원전 인도에서 제작된 에메랄드 불상이 천년의 긴 세월 동안 인도차이나 각국을 떠돌며 이를 쟁취하기 위해 각축을 벌인 것, 모두가 인도차이나 반도의 특수성을 말해준다. 빈약한 역사 지식과 인도차이나에 대한 몰이해로 시작된 방콕의 여정은 미련과 안타까움만 남기고 해안가 휴양도시인 파타야로 이어진다. <파타야>

파타야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인지 시골 도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이며, 주변에 펼쳐진 풍광은 다소 황량한 느낌이 들 정도로 드문 마을이 이어졌다. 야자수 사이로 보이는 촌락의 집들, 오래된 건물과 띄엄띄엄한 과수원, 다듬어지지 않은 이국의 풍경은 더운 날씨와 함께 아직 정감이 들지 않는다. 가이드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설명하지만 생경한 태국어에 대한 불감증으로 지나가는 바람소리처럼 들리고 만다. 소주의 원료인 파피오카, 종이를 만드는 나무칼립투스, 한해 삼모작의 혜택을 받은 나라, 넘치는 땅과 풍부한 자원, 과속 단속이 없고, 그리고 관광자원까지 뛰어난 태국은 정말 축복받은 나라라는 가이드의 말에 좀처럼 공감이 가지 않는다. 파타야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인지 시골 도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이며, 주변에 펼쳐진 풍광은 다소 황량한 느낌이 들 정도로 드문 마을이 이어졌다. 야자수 사이로 보이는 촌락의 집들, 오래된 건물과 띄엄띄엄한 과수원, 다듬어지지 않은 이국의 풍경은 더운 날씨와 함께 아직 정감이 들지 않는다. 가이드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설명하지만 생경한 태국어에 대한 불감증으로 지나가는 바람소리처럼 들리고 만다. 소주의 원료인 파피오카, 종이를 만드는 나무칼립투스, 한해 삼모작의 혜택을 받은 나라, 넘치는 땅과 풍부한 자원, 과속 단속이 없고, 그리고 관광자원까지 뛰어난 태국은 정말 축복받은 나라라는 가이드의 말에 좀처럼 공감이 가지 않는다.

파타야 파타야

파타야 1박 2일 관람은 트랜스젠더들의 알카자 쇼, 니모 섬 스노클링, 황금절벽 사원, 논누트 빌리지로 채워졌다. 파타야는 휴양도시답게 거리는 활기차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여행객들로 국제도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파타야의 밤에는 더욱 환락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은 행동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도시 자체의 미관은 깨끗하지 않았고, 질서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다만 해안과 맞닿은 음식점에서 간편한 옷차림의 남녀가 자유로운 느낌으로 즐기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파타야 1박 2일 관람은 트랜스젠더들의 알카자 쇼, 니모 섬 스노클링, 황금절벽 사원, 논누트 빌리지로 채워졌다. 파타야는 휴양도시답게 거리는 활기차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여행객들로 국제도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파타야의 밤에는 더욱 환락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은 행동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도시 자체의 미관은 깨끗하지 않았고, 질서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다만 해안과 맞닿은 음식점에서 간편한 옷차림의 남녀가 자유로운 느낌으로 즐기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니노시마 스노클링 니노시마 스노클링

기대를 부풀린, 사실 관광지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사전 지식 때문이 아니라 가이드의 거듭된 강조형 멘트에 주입된 니노시마의 스노클링은 한마디로 헛웃음만 나온 시간이었다. 파타야에서 약 20분 거리의 배를 타고 섬 해안에 도착한다. 관광객들은 스노클을 받아 착용하고 고개를 숙여 물속을 구경한다. 물고기가 오가는 모습이 보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도 도망치지 않는 점은 인상 깊었다. 다시 배를 타고 자리를 옮겨 다른 해변으로 향한다. 역시 방법은 같다. 스노클링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시간이었다. 기대를 부풀린, 사실 관광지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사전 지식 때문이 아니라 가이드의 거듭된 강조형 멘트에 주입된 니노시마의 스노클링은 한마디로 헛웃음만 나온 시간이었다. 파타야에서 약 20분 거리의 배를 타고 섬 해안에 도착한다. 관광객들은 스노클을 받아 착용하고 고개를 숙여 물속을 구경한다. 물고기가 오가는 모습이 보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도 도망치지 않는 점은 인상 깊었다. 다시 배를 타고 자리를 옮겨 다른 해변으로 향한다. 역시 방법은 같다. 스노클링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시간이었다.

‘파타야의 밤’은 알 카자 쇼로 시작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트랜스젠더 쇼가 주는 일탈의 분위기가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이드에 따르면 파타야에는 트랜스젠더가 출연하는 소가 티파니쇼 등 여러 곳이 성황을 이뤘지만 코로나19 이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자 모두 문을 닫았는데, 그중 최근 알카자쇼가 가장 먼저 다시 문을 열면서 관광객들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알카자쇼의 명칭은 스페인 알카자르성의 이름을 따 만든 것이라며 알카사르성주 중 트랜스젠더가 있었다는 데 기원을 두고 있다는 가이드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파타야의 밤’은 알 카자 쇼로 시작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트랜스젠더 쇼가 주는 일탈의 분위기가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이드에 따르면 파타야에는 트랜스젠더가 출연하는 소가 티파니쇼 등 여러 곳이 성황을 이뤘지만 코로나19 이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자 모두 문을 닫았는데, 그중 최근 알카자쇼가 가장 먼저 다시 문을 열면서 관광객들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알카자쇼의 명칭은 스페인 알카자르성의 이름을 따 만든 것이라며 알카사르성주 중 트랜스젠더가 있었다는 데 기원을 두고 있다는 가이드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스페인 알카사르 성 스페인 알카사르 성

우리가 극장에 입장했을 때 공연은 이미 시작됐고 관람장은 만원이었다. 이곳에서도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프로그램 내용을 다른 쇼장에서 베끼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알려진 명성이 좀 지나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무난한 수준이었다. 각국의 민속음악이 포함됐는데 한국의 경우 불국사를 무대 배경으로 한복을 입은 무희들이 아리랑을 불렀는데 정말 어색하고 춤도 딱딱하고 성의가 없는 것 같아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전체적인 안무는 느리고 직선적이어서 무희들의 육감과 생동감을 살리는 데는 실패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극장에 입장했을 때 공연은 이미 시작됐고 관람장은 만원이었다. 이곳에서도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프로그램 내용을 다른 쇼장에서 베끼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알려진 명성이 좀 지나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무난한 수준이었다. 각국의 민속음악이 포함됐는데 한국의 경우 불국사를 무대 배경으로 한복을 입은 무희들이 아리랑을 불렀는데 정말 어색하고 춤도 딱딱하고 성의가 없는 것 같아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전체적인 안무는 느리고 직선적이어서 무희들의 육감과 생동감을 살리는 데는 실패한 느낌이 들었다.

알카자 쇼 알카자 쇼

넷째 날은 무더운 날씨다. 열대의 뜨거운 열기가 대지를 불태우다. 이런 날씨는 관광에 적합하지 않다. 호텔이 휴양지로서 최고의 가치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넷째 날은 무더운 날씨다. 열대의 뜨거운 열기가 대지를 불태우다. 이런 날씨는 관광에 적합하지 않다. 호텔이 휴양지로서 최고의 가치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파타야를 떠나 방콕으로 가기 전 짧은 일탈의 시간이다. 해변에 위치한 호텔은 수영장이 해변에 접해 있다. 브루나이에 갔을 때 묵었던 7성급 황금호텔과 비슷한 분위기다. 파타야를 떠나 방콕으로 가기 전 짧은 일탈의 시간이다. 해변에 위치한 호텔은 수영장이 해변에 접해 있다. 브루나이에 갔을 때 묵었던 7성급 황금호텔과 비슷한 분위기다.

호텔의 수영장 호텔의 수영장

파타야에서의 일정은 여행의 끝이라 그런지 기백은 가라앉고 더위만이 정신을 지배하는 느낌이었다. 황금절벽의 사찰, 멀리서 보이는 황금불상, 거의 천억을 들여 조성했다는 가이드의 말이 허공으로 사라진다. 외국인인 내 정서로는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그저 구경거리 중 하나였다. 파타야에서의 일정은 여행의 끝이라 그런지 기백은 가라앉고 더위만이 정신을 지배하는 느낌이었다. 황금절벽의 사찰, 멀리서 보이는 황금불상, 거의 천억을 들여 조성했다는 가이드의 말이 허공으로 사라진다. 외국인인 내 정서로는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그저 구경거리 중 하나였다.

황금의 절벽 사원(와카오우치잔) 황금의 절벽 사원(와카오우치잔)

거대한 공룡이 무리지어 있는 이곳의 이름은 논눅빌리지다. 식물원인지 리조트인지 그 정체가 모호하다. 이곳의 주인 할머니는 왕족 남편으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300만 평의 땅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규모로 커졌다는 설명이다. 근데 날씨가 너무 더워. 거대한 공룡이 무리지어 있는 이곳의 이름은 논눅빌리지다. 식물원인지 리조트인지 그 정체가 모호하다. 이곳의 주인 할머니는 왕족 남편으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300만 평의 땅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규모로 커졌다는 설명이다. 근데 날씨가 너무 더워.

논누크 빌리지 논누크 빌리지

셔틀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돈 뒤 알카자 쇼와 비슷한 쇼를 보여준다고 한다. 행사장에 입장하니 역시 이미 시작됐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어떻게 가이드는 쇼 입장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자리를 옮겨 옆 공연장에 도착하면 이번엔 코끼리들이 몰려와 장난을 치고, 공굴리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진기한 모습을 연출한다. 셔틀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돈 뒤 알카자 쇼와 비슷한 쇼를 보여준다고 한다. 행사장에 입장하니 역시 이미 시작됐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어떻게 가이드는 쇼 입장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자리를 옮겨 옆 공연장에 도착하면 이번엔 코끼리들이 몰려와 장난을 치고, 공굴리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진기한 모습을 연출한다.

논누크 빌리지 코끼리 쇼 논누크 빌리지 코끼리 쇼

와트 아룬 사원 와트 아룬 사원

마지막 날 유람선으로 방콕 차오프라야 강을 관광할 때 단연 눈에 띄는 사원이 있었다. 일명 새벽 사원으로 불리기도 하는 왓아룬 사원이다. 아유타와 시대에 건축된 건물이지만 미얀마의 침공으로 멸망한 아유타야를 대신해 새로운 왕조인 톤부리 왕조 시대(1767-1782)를 연 탁신왕에 의해 왕실 사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수도를 톤부리에서 강 건너 방콕으로 옮기기 전 에메랄드 불상(프라케우)이 현재의 와트 프라케우에 안치돼 있던 보관 사원으로 역대 태국 왕의 증축과 개축 등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마지막 날 유람선으로 방콕 차오프라야 강을 관광할 때 단연 눈에 띄는 사원이 있었다. 일명 새벽 사원으로 불리기도 하는 왓아룬 사원이다. 아유타와 시대에 건축된 건물이지만 미얀마의 침공으로 멸망한 아유타야를 대신해 새로운 왕조인 톤부리 왕조 시대(1767-1782)를 연 탁신왕에 의해 왕실 사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수도를 톤부리에서 강 건너 방콕으로 옮기기 전 에메랄드 불상(프라케우)이 현재의 와트 프라케우에 안치돼 있던 보관 사원으로 역대 태국 왕의 증축과 개축 등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와트 아룬 사원 와트 아룬 사원

왓 아룬은 크메르의 힌두교 아버지이자 사원이다. 태국 역사에서 아유타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고 많은 사원 건축물이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와트 양식을 답습한다. 옥수수 형태의 징병과 프랑 형태를 기본적으로 취하고 있는 사원에 대한 애착은 왕실에서 비롯된다. 불교는 태국인의 생활문화 그 자체다. 라마 1세의 불교정책 이전의 수코타이 아유타야에서 불교는 국력의 표현이요, 왕의 자부심이요, 국민의 삶이었다. 라마 4세는 27년간 승려로 활동하면서 시암의 뿌리로 돌아가자고 주창하며 그 뿌리를 찾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태국 국민에게는 불교 사찰 교육의 중심지이자 정치인에게는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 역할을 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유일하게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던 태국의 국정 기반이 바로 불교였고, 그 활동의 중심이 사원이었다. 왓 아룬은 크메르의 힌두교 아버지이자 사원이다. 태국 역사에서 아유타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고 많은 사원 건축물이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와트 양식을 답습한다. 옥수수 형태의 징병과 프랑 형태를 기본적으로 취하고 있는 사원에 대한 애착은 왕실에서 비롯된다. 불교는 태국인의 생활문화 그 자체다. 라마 1세의 불교정책 이전의 수코타이 아유타야에서 불교는 국력의 표현이요, 왕의 자부심이요, 국민의 삶이었다. 라마 4세는 27년간 승려로 활동하면서 시암의 뿌리로 돌아가자고 주창하며 그 뿌리를 찾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태국 국민에게는 불교 사찰 교육의 중심지이자 정치인에게는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 역할을 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유일하게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던 태국의 국정 기반이 바로 불교였고, 그 활동의 중심이 사원이었다.

짧은 기간의 태국 여행으로 태국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게다가 여행 프로그램이 휴양성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또한 인도차이나반도의 역사가 여러 나라의 합종연횡한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종합적인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여러모로 부족한 깨달음이었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 시간이었다. 인도차이나, 아니 더 확장해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네오, 싱가포르, 필리핀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의 역사 인식을 위한 밑그림이 그려졌다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열강이 그들의 편의에 따라 임의로 붙인 동남아시아라는 이름, 거기서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을 발견한다. 이번 태국 여행은 세계사의 흐름과 아시아 민족에 대한 탐구로 가는 그 시작이 된 셈이다. 짧은 기간의 태국 여행으로 태국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게다가 여행 프로그램이 휴양성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또한 인도차이나반도의 역사가 여러 나라의 합종연횡한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종합적인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여러모로 부족한 깨달음이었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 시간이었다. 인도차이나, 아니 더 확장해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네오, 싱가포르, 필리핀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의 역사 인식을 위한 밑그림이 그려졌다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열강이 그들의 편의에 따라 임의로 붙인 동남아시아라는 이름, 거기서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을 발견한다. 이번 태국 여행은 세계사의 흐름과 아시아 민족에 대한 탐구로 가는 그 시작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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